불교/배우는 마음

평산 신씨 시조. 장절공 신순겸장군.

상현/맑은강물 2015. 8. 4. 20:54

평산 신씨 시조. 장절공 신순겸장군.(춘천)

 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신숭겸(申崇謙)이다. 신숭겸의 본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이며, 전라도 곡성현(谷城縣) 출신이다.[2] 태조(太祖) 왕건에게 평산에서 신(申)씨 성을 사성(賜姓)받았다. 태봉의 장군으로 있다가 배현경(裵玄慶), 홍유(洪儒), 복지겸(卜智謙)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王建)을 황제로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927년(태조 천수(天授) 10) 팔공산에서 견훤과의 전투 중 전사하였다. 이에 태조 왕건은 순절한 신숭겸에게 벽상호기위태사개국공삼중대광의경대광위이보지절저정공신(壁上虎騎衛太師開國公三重大匡毅景戴匡衛怡輔砥節底定功臣)을 추봉하였다. 시조 신숭겸의 묘소인 신장절공묘역(申壯節公墓域)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고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향사한다.

분파.

 

군수공파(郡守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판윤공파(判尹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이상공파(貳相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제정공파(齊靖公派), 온수감공파(溫水監公派),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사간공파(思簡公派), 한성윤공파(漢城尹公派), 정언공파(正言公派), 문희공파(文僖公派), 장령공파(掌令公派), 봉상윤공파(奉常尹公派), 밀직공파(密直公派) 등 17개 분파가 있다.

인물     평산 신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78명, 무과 급제자 90명을 배출하였다.

  • 신영(申瑛, 1499년(연산군 5년) ~ 1559년) : 조선 명종 때 호조판서, 한성부우윤
  •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년 ∼ 1551년) : 조선 중기의 여류예술가
  • 신립(申砬, 1546년 ∼ 1592년) : 조선 중기의 무신. 북변에 침입한 이탕개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했다. 함경북도병마절도사, 우방어사, 중추부동지사, 한성부 판윤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왜군과 대결했으나 패했다.[3]
  • 신흠(申欽, 1566년 ~ 1628년) : 조선 중기의 문신. 동인의 배척을 받았으나 선조의 신망을 받았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대명외교문서의 제작,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 제작에 참여하였다. 정주학자로 이름이 높아, 이정구, 장유, 이식과 함께 한문학의 태두로 일컬어진다. 1651년에 인조 묘정에 배향되었다.[4]
  • 신임(申銋, 1639년 ~ 1725년) : 조선 중기의 문신. 1657년(효종 8) 진사시에 합격, 1680년(숙종 6)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효종릉의 사건으로 귀양간 아버지의 억울함을 격쟁(擊錚)하여 방환하게 한 뒤, 1686년 별시문과에 응시하여 병과로 급제하였다. 전적(典籍)·호조좌랑·경기도도사·정언(正言) 등을 거쳐 1696년 지평(持平)이 되었다. 이 때 서문중(徐文重)이 정승이 되자,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가 복위될 때 희빈 장씨(禧嬪張氏)를 두둔하려 했다고 탄핵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경성판관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 곧 병조정랑 등을 거쳐 연안부사, 수원부사, 황해감사·대사간·이조참의를 역임하고 개성유수로 임명되었으나 조정과 마찰을 빚어 파직되었다. 그 뒤 육조의 여러 벼슬과 도승지·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718년 지중추부사가 되면서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참찬과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경종이 즉위한 뒤 병약하자 연잉군(延礽君)을 세제(世弟)로 책봉하고 대리청정하게 하려고 세자청정의 근거를 『세종실록』에서 초출하였다. 1722년(경종 2) 신임옥사가 일어나자 소론을 꾸짖고 동궁을 보호하는 소를 올려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영조 즉위 후 사면되어 돌아오는 길에 해남에서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편히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아라.

강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여라.

너의 힘에 알맞은 일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아라.

모든일을 처리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노력하고 기도하여라.

 

신유.  일소일소 일노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