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는 이야기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상현/맑은강물 2015. 10. 21. 21:36

사명대사와 서산대사.(사명대사 출생지.경남 밀양시 무안면)

밀양시와 창녕군의 접경에 영취산행을 가던중에 사명대사님의 출생지를 알게 되었다. 박물관과 생가지에 대사의 유적들이 있었다.

요즘의 불교. 통행세가 없으면 사찰에 들어갈 수 없는 현실과 비교되는 공적인 삶을 사신 대승.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생각해 본다.

<서산대사> (사명대사의 스승)

서산대사 휴정은 완산 최씨 최세창의 아들로 평안도 안주에서 출생했다. 9세 때 모친상을 당하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별세하자 안주목사 이사증의 양자로 들어갔다. 양부모를 따라 서울로 거처를 옮겼으며, 그 후 사찰에 기거하며 글과 무예를 익혔다. 그러던 중 영관대사의 설법을 듣고 불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훗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1549년(명종 4)에 승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전국의 유명한 산을 돌아다니며 후학들을 지도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 역모사건 때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으나 선조 임금이 직접 신문한 결과 무죄가 입증되어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먼저 임금을 찾아가 승병을 일으킬 것을 고하니 선조 임금은 대사를 팔도 도총섭(八道都總攝)에 임명하고 승병을 지휘하도록 했다. 대사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돌려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서도록 당부했다. 그는 순안 법흥사에서 1,500여 명, 그의 제자인 사명대사는 금강산에서 700여 명, 처영은 지리산에서 1,200여 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순안과 평양 등지에서 일본군 토벌에 공을 세웠다. 서산대사가 이끄는 승병군은 1593년 명나라군과 함께 평양과 개성 수복에 공을 세웠다.

전란 이후 그는 승려로서는 최고의 존칭과 정2품 당상관 벼슬을 받았으며 묘향산에서 수도하던 중 1604년에 입적했다.

 

<사명대사>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은 임수성의 아들로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서산대사와 함께 투옥되었으나 무죄로 밝혀져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 휴정의 휘하로 들어가 승병 모집과 훈련에 힘썼다. 이듬해 승군 도총섭(僧軍都摠攝)이 되어 명나라군과 협력하여 평양을 수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경상남도 의령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여 공을 세우고 당상관의 위계를 받았다. 1594년 명나라군 장수 유정(劉綎)과 의논하여 일본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진중을 3차례 방문하여 강화를 위한 회담을 하기도 했다.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 마귀와 함께 울산왜성과 순천왜성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1602년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使)가 되었다. 1604년 선조 임금의 친서를 휴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그 이듬해 전란 때 잡혀간 조선인 포로 3,000여 명을 인솔하여 귀국했다.

 

 

 

 

생가 안채.

사랑채.

대문.

사명대사.만화동영상.

서산대사 해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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