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산 사랑

계룡산

상현/맑은강물 2008. 5. 4. 22:19

이 코스는 신원사주차장을 따라 신원사 고왕암 등 고찰들을 체험할 수 있고 신원사지구의 주봉인 연천봉을 경험할 수 있는 

코스이다.

 코스 신원사-계곡-문필봉-관음봉-자연선릉-큰배제-상신주차장...

이 코스는 신원사의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체험할 수 있고 더불어 연천봉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이다

신원사주차장을 출발해 신원사에 다다르면, 천년고찰인 신원사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을 체험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신원사노사나불괘불탱과 계룡산중악단 같은 문화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신원사를 따라 소림원, 금룡암, 

 고왕암 등 고찰들을 거치면 본격적인 산행길이 시작된다. 연천봉에 이르는 코스는 비교적 완만하나 연천봉삼거리 하단구간

에서는 충분한 휴식후 오르는 것이 좋다.

 

 연천봉에서는 논산방향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연천봉 낙조는 계룡8경중 하나로 계룡산국립공원이 자랑하는 절경중 

하나이다. 

 

 

 

 

 

 

 

 

 

 

 

 

 

 

    

 

 

 

 

 

 

한 산사나이가 하모니커를 멋들이게 불고있다. 산야를 보고 온몸을 흘들며 불어대니 산사람들이 넉 놓코 선율에 매려되어

가던 산행을 멈추고 연주자가 향한곳으로 시선을 두고 다 감상하고 있다. 연주자는 신들린 것처럼 계속 연결 연주 한다.

 

 

 

 

 

 

 

 

 

  

 

 

 수고하여주신 마 창 우정산악회에서 수고하신 존경하는 임원진에게 감사를 드림니다.

 

 1800원의 51명의 입장료를 낸 신원사와 주위 사찰에 대한 자료  [불교 사찰자료]

 

신원사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년) 열반종을

개창한 보덕(普德)화상이 창건한 뒤 고려 성종 때 여철(如哲)화상이 대웅전을 중수했고, 이후 충렬왕 24년(12

98년) 부암(浮庵)화상이 중건한 데 이어 조선 태조 3년(1394년) 무학(無學)대사가 중창하는 등 여러 차례의 중수

와 중창을 거듭하다 1946년 만허(滿虛) 스님이 중수, 현재에 이르고 있는 고찰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이후 현

재의 위치로 옮겨 온 신원사의 원래 위치는 중악단 앞 넓은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조계종 6교구 마곡사 말사

로 등록돼 있다.
규모면에서는 가장 작지만, 분위기 면에서는 가장 절다운 절로 꼽히고 있는 신원사의 문화유적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려 때 것으로 추정되는 5층석탑이다. 중악단 맞은편에 있는 5층석탑은 신라의 석탑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현재 2층 기단 위에 4층 탑신부만 남아 있다. 75년 해체 복원할 당시 1층 탑신의 사리공에서 사리

구를 비롯, 중세 중국의 동전과, 황유(黃釉)·주자(注子)·사리병 등이 발견되었다.

중악단과 계룡산신제 신원사 경내에 위치한 중악단(中嶽檀)은 예로부터 국행제가 열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

계룡산은 신라 5악(嶽)의 하나로 계룡산사(鷄龍山祠)에서 소사(小祀)를 받들었으나 19세기말 소사와 중사의 명칭이

사라지면서 계룡산사가 계룡단으로 바뀌었다. 계룡단은 고종 때 묘향산 (상악)·지리산(하악)과 함께 삼악(三嶽)의 하나

로서 중악단으로 개칭됐다.
1999년 3월2일자로 충남 유형문화재에서 보물 제1293호로 격상된 계룡단의 원래 위치는 신원사 대웅전 뒤인 것으로 최

근 고증됐다.
계룡산신제는 고대에는 무(巫)의 의례,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무와 유교 의례 혼합형식, 조선시대에는 유교식 의례로

치러지다가 효종 2년(1651년)에 폐지됐다. 이후 조선 말 고종 16년(1879년) 명성황후가 재건하여 불교식으로 봉행

하던 계룡산신제는 일제 이후 사라졌다가 1998년부터 유·불·무 세 가지 형식으로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계룡산 산신제는 원래 나라에서 축문과 향을 받아 공주향교가 주제해온 국행제(國行祭) 였으나, 조선조가 끝나면서 중단

되었다. 이후 신원사가 불교식 산신대제로 치르다가 1998년부터 원래 형식인 유가식, 불가식, 무식을 되찾았다.

고왕암과 마명암 신원사계곡 깊숙이 들어앉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들 융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암자다. 부여에서 나당연합군을 피해 온 왕자는 7년간 머물던 암자이기에 묵을 '古(고)' 자를 써 고왕암이라 이름지

어졌다는 것.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함께 새로운 도읍지를 찾던 중 머물렀다 하여 고왕암이라 한다는 얘기도

전한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20년(660년) 등운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왕암은 법당 뒤에 커무튀튀한 빛깔의 암벽이

우뚝 솟아 있고, 앞에는 대나무로 둘러싸여 고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암자다. 멀리 논산과 공주 일원이 한눈에 보이는

등 전망도 뛰어나다. 암벽에 움푹 파인 바위굴은 고왕암굴이라 불린다.
고왕암 부근에 있었다는 마명암(馬鳴庵)은 왕자가 신라군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애마(愛馬)가 슬피 울다 죽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암자다.

등운암과 연천봉 기도터 연천봉 턱 밑에 위치한 등운암(騰雲庵)은 신라 문무왕 5년(665년) 등운대사가 창건했

다는 암자로, 천황봉과 쌀개봉, 자연성릉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연천봉 낙조는 계룡팔경

중 3경으로 꼽히는 절경이다.
계룡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등운암은 이씨 조선을 넘보는 정씨(鄭氏)의 기운을 누른다는 의미에서 압정사(壓鄭寺)

로 이름이 바뀐 적도 있다 전한다. 연천봉 정상의 '方百馬角 口或禾生(방백마각 구혹화생)'이란 암각 글자는 '482년 후에

나라가 망한다'는 내용으로, 이씨 조선의 천명을 지적한 것. 암각 글자의 예언과 달리 조선이 더 길게 이어진 것은 정도령

의 정기를 누르기 위해 암자이름을 압정사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등운암~연천봉 산길 중간에 위치한 기도터는 이름난 기도터다. 무속인뿐 아니라 일반 기도객들도 찾고 있는 이 기도터는

특히 입시철이면 전국 각지에서 학부모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참석하신 울 회원님 그리고 일일회원님 산행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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