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 요약

세상을 아름답게 보아라. 하심.

상현/맑은강물 2023. 12. 7. 20:45

하심

마음에는 네 가지 병이 있으니

첫째는 탐심과 음욕이요.

둘째는 성내고 미워하는 것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요.

넷째는 나라는 생각이니라. [현겁경]

 

나를 버려야 세상을 얻는다.

그때 “상불경”이라는 보살비구가 있었느니라. 득대세야. 무슨 인연으로 상경불이라 하였는지 아는가. 이 비구는 만나는 비구 비구니 우바세 우바이를 보는 대로 모든 다 예배하고 찬탄하여 이렇게 말했느니라.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하고 가볍게 여기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반드시 성불할 것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비구는 경전을 읽지도 않고 외우지도 아니하고 다만 예배만 행하였느니라. 멀리서 사부대중을 볼지라도 또한 쫓아가서 예배하고 찬탄하여 말하였느니라.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하고 가볍게 겨기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반드시 성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부대중 가운데 화를 내어 마음이 맑지 못한 사람들이 악한 말로 꾸짖고 욕하였느라.

“이 어리석고 무지한 비구야. 너는 어디서 와서 우리들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며 또 반드시 성불하리라 수기를 하느냐. 우리들은 이와같이 허망한 수기를 받지 않겠노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두루 돌아다니며 항상 비웃음과 욕을들을 지라도 화를 내지 않고 말하였느니라.

“그대들은 반드시 성불하리라.”

그가 이런 말을 할 때 여러 사람들이 막대기나 기와. 돌로 때리면 멀리 피해 달아나며 오히려 큰 소리로 말하였느니라.

“나는 그대들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성불할 것입니다.”

그가 항상 이런 말을 하고 다녔음으로 자신이 깨달았다고 여기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은 그를 “상불경”보살이라 불렀느니라.(.....)득대세야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 때의 “상불경” 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그 사람이 바로 내 몸이었느니라. [법화경]

“상불경보살”이란. 글자 그대로 “결코 상대방을 하찮게 않는다는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을 공경하는 상불경보살, “나”라는 상이 가득하다면 결코 실천할 수 없습니다. 나를 하염없이 잦추고 낮추었기에. 상대방이 예배하고 감탄해야 할 부처님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나라는 생각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부처님처럼 예배하고 찬탄할 수 있었겠습니까. 부처님 가르침은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는 공부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면.“나”나라는 생각을 방어하고 변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견해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러저러한 견해가 가득차 있다면 분별심은 샘솟듯이 솟아납니다. 그러한 분별심 때문에 세상에 있는 그대로보기는 틀린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인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이의 당연한 마음 자세이자 생활 속 수행입니다. 이것을 “하심”이라 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찌들어 있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못된 업, 더러운 빼를 닦아 내고 맑은 자아를 발견하여 깨달음을 이루어 나가는 데는 첫째도 둘째도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고 공경하는 “하심” 공부가 제일입니다. 진정 자신을 낮출 때만이 남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마음을 버님 법으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하심”이는 불교 공부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자신이 잘나고 제일이라고 우쭐대는 모습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고 모자라는 일입니다. 특히 불자에게 있어 이런태도는 신앙생활을 더디게 할 뿐이니라. 점점 부처님의 법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불법을 공부하는 자는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세상으 모든 일어 있어서 교만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릇을 비워야 채울 수 있고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알차게 열리듯이. 나를 버려야 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