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 요약

세상을 아름답게 보아라. 아상

상현/맑은강물 2023. 12. 18. 03:47

공부할수록 높아가는 아상.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점정 점점 “하심”과 반대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점점 익혀감에 따라 “나는 무엇을 했네. 나는 무엇을 보았네”하며 처음 발심할 때의 겸손한 마음 자세는 오간데 없고 스스로 아상만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갑니다. 가끔 “어느 경전에 보았다고 하거나. 어떤 스님을 안다”고 할 때. 그 밑바탕에는 자만심이 자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것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놓쳐 버립니다. 이것이 하나의 상인 줄 모릅니다.

다음 이야기를 보면 아상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장스님은 만년에 태백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 하고자 하였다. 하루는 다 떨어진 옷을 입은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지고서 스님을 찾아왔다. 그는 자장스님의 시자에게 말했다.

“자장스님을 보려 왔다.”

그러자 시자가 발끈하여 말했다.

“우리 큰 자장스님을 뫼신 이래 감히 큰 자장스님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아직 보지 못했거늘. 나는 대체 누구인데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느냐?” 말하였다.

“너희 자장스님에게 알리기만 해라.”

시자가 돌아가 알리자 자장스님은 말하였다.

“미친놈 인가 보다.”

시자가 이 말을 듣고 나와 욕을 하며 그 거사를 내 쫓았다.

그러자 거사가 말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아상을 가진 자가 어떻게 나를 알아볼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칡 삼태기를 뒤집어 터니 죽은 개가 사자로 변하였다.

거사는 그 사자를 타고 빛을 뿌리며 가 버렸다. 자장스님이 그 말을 듣고서야 위의를 갖추고 그 빛을 찾아 쫓아갔지만 이미 아득해져 따라가기 못 하였다. 그러자 자장스님은 몸을 던져서 목숨을 마쳤다.   삼국유사.

교만은 “아상”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색하다는 것도 “나”라는 생각, “내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이 됩니다. 따라서 재능과 아름다운 인품과 덕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나’라는 생각이 있으면 보나 마나 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재능과 인품과 덕성은 위선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심은 생활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심도 상이 되어 또 다른 교만. 아만이 됩니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면서도 혹시 모습을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마음을 비만 또는 아열만이라고 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높고 훌륭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겸손한 체하는 경유입니다. 참으로 삶속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낮춤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이 아닌 경우. 마음 저변에는 아만이라는 번뇌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목경환교수님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