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나를 찾아서(사경)

세상을 아름답게 보아라. 죽음에 대하여.

상현/맑은강물 2024. 6. 1. 14:57

가까운 이의 죽음을 대하는 마음.                   (숫타니파타 화살경)

 

이 세상에 사람의 목숨이란 것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비참하고 짧아서 괴로움에 얽혀 있다.

 

태어난 존재로서 죽음을 피하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늙으면 반드시 죽음을 닥치는데.

실로 그것은 존재의 운명이다.

 

결국 잘 익은 과일처럼

아침이면 떨어질 위험이 뒤따른다.

이와 같이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이 항상 따라 다닌다.

 

옹기장이가 빚은 질그릇이

마침내 모두 깨지고 말듯이

태어난 사람의 목숨도

결국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이나

모두가 죽음 앞에서는 굴복한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죽음에 굴복해 고통을 당하면서

다른 세상으로 가지만.

아버지는 자식을 구하지 못하며

친척도 그가 아는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자세히 살펴보라.

많은 친척이 통곡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사람들이 하나하나 죽어간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늙음과 죽음에 고통 받는다.

그러므로 현자는

세상의 이치를 잘 알아 슬퍼하지 않는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가고 오고 그 길을 알지 못한다.

생사의 양극단을 알지 못해

부질없이 통곡만 한다.

 

그렇게 슬피 울고 통곡하면서

어리석게 자신을 해치는 사람에게

이익이 하나라도 생긴다면

현자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울부짖고 슬퍼해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그의 괴로움은 더욱 심해지고

몸만 계속 여월뿐이다.

 

몸만 여위고 안색만 창백해져서

스스로 해칠 뿐이다.

그렇게 한다고 죽은 이가 살아날 수 없으니

통곡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슬픔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더욱 더 그리움에 빠진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울부짖는 것은

슬픔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업에 끌려서

태어난 운명에 처한 다른 이들을 보라.

죽음의 지배 아래 놓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생명을 보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결과는 생각과 다르게 나타난다.

세상에서 떠남도

이와 같으니 세상의 이러한 이치를 보라.

 

이 세상에 사람이 백년을 살거나

그 이상을 산다 하더라도

결국엔 친지와 헤어져야 하고.

이 세상의 목숨을 버린다.

 

그러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목숨을 다해 죽은 이를 보고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한다고

슬피 울며 비탄해 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집은 물을 부어 꺼야 하듯이.

현명한 이나 지혜로운 이나

슬기로운 이나 선 이들은

바람에 솜털을 날려 버리듯이

생겨나는 슬픔을 날려 버려야 한다.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아버리듯이

자신에게 비탄과 갈망과

근심과 번뇌의 화살을 뽑아버려야 한다.

 

번뇌의 화살을 뽑아버려 집착이 없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

모든 슬픔을 뛰어넘어

슬픔이 없는 사람이 되어 열반에 들 것이다.